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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인사이트] AI 반도체, '정책 경쟁'이 시장 지도 바꾼다 2025-11-24 09:59
AI 시대의 반도체는 단순한 부품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핵심 인프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각국 정부가 직접 개입해 규제를 만들고, 보조금을 주고, 생산기지를 유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지난 2~3년 사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기술 경쟁보다 정책과 지정학이 판도를 바꾸는 시장이 됐습니다.

특히, AI 확산 속도가 빨라지면서 각국은 "우리 안보를 지키고, 우리의 산업을 키우기 위해 어떤 칩을 만들고 어떤 칩을 제한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 미국 "AI 기술 유출은 차단, 중국에는 더 강하게"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부터 AI 반도체와 클라우드 서비스까지 묶어 관리하는 강력한 규제 체계를 도입했습니다.

이 규제들은 첨단 AI 칩, HBM, 패키징 기술, 심지어 모델 파라미터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올해 트럼프 행정부로 바뀐 후 기조는 조금 조정됐습니다.

동맹·우방국과의 기술 흐름은 일부 완화한 반면, 중국에 대한 표적 규제는 더 촘촘하게 강화했습니다.

즉, 미국의 방향성은 "최첨단 AI 칩은 미국이 통제한다. 특히, 중국으로 가는 길은 더 막는다"입니다.

이 정책은 글로벌 공급망을 미국 중심 블록으로 재편하는 핵심 동력입니다.

◇ 유럽 "AI·HPC 칩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자립 생태계 구축"

유럽은 "미국·아시아 의존도를 줄이자"는 목표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유럽칩스법(EU Chips Act) 2030년까지 유럽 반도체 생산 비중을 2배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유럽의 핵심 전략은 △고성능 컴퓨팅·AI 반도체 R&D 대규모 투자 확대 △설계·제조·패키징을 모두 유럽 내로 가져오는 생태계 구축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유럽 내 공장·R&D 센터 유치 입니다.

즉, 유럽은 반도체 산업 전체를 하나의 '자급 가능한 블록'으로 만들려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 중국 "제재를 뚫기 위해 반도체 자립에 국가 총력전"

미국의 규제가 강화되자 중국은 오히려 더 공격적으로 자립 전략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빅펀드'를 비롯한 대규모 국가 자금을 투입해 반도체 설계부터 제조, 장비까지 전 공정을 국산화하는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제재로 해외 기술 의존이 어려워지자 화웨이와 SMIC를 중심으로 자체 AI 칩 개발 속도도 크게 높아진 상황입니다.

여기에 더해 중국은 공공 조달과 대형 플랫폼 기업을 중심으로 내수 시장에서 국산 칩을 우선 사용하는 생태계 구축에 나서며, 반도체 공급망 전반을 중국 내부에서 자급할 수 있는 구조로 재편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서 외국산 없이도 돌아가는 AI·반도체 시스템을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세 지역의 정책 기조는 서로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모두가 응용특화 반도체(ASIC·SoC·FPGA) 수요를 급격히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은 공통적입니다.

우선 글로벌 시장에서는 한 기업이 동일한 칩을 전 세계에 공급하던 시대가 사실상 저물고, 각 지역의 규제와 보안 기준, 기술 표준에 맞춘 '지역 전용 칩'이 필요해지고 있습니다.

미국·유럽·중국의 정책 경쟁이 격화되면서 HBM·패키징·파운드리 분야에서 한국과 대만의 전략적 가치가 크게 높아졌고, 어떤 국가·정책 블록과 협력할지를 결정하는 일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정책 변화는 기업에 리스크이자 기회로 동시에 작용합니다.

수출 규제로 인해 일부 시장 진출이 제한될 수 있지만, 반대로 새로운 수요와 우회 시장이 만들어지면서 정책이 곧 시장 구조를 재편하는 힘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 이나연 기자 / nayeon@mk.co.kr ]